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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想詩]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겸손(자기비움-Kenosis)” (빌립보서2장1절~8절) / 李觀衡
메리 크리스마스
미니멀 라이프 시대의 우리는 ‘얼마나 비웠는가?’ 혹은 ‘얼마나 채우고
성취했는가?’ 라는 질문에 본문을 통해 생각해 보려 하느니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자기비움의 신앙을 배우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축복의 진리를 살피려 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기쁨이 사라진 빌립보 교회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마음을 품을 때만
공동체가 일치단결할 수 있다는 말이니라.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말하느니라.
이는 그리스도의 ‘겸손’의 신앙을 통하여 공동체의 기쁨을 회복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함이니 ‘겸손’은 개인의 인격 수양이 아니라 공동체의 연합과
일치에 목적이 있는 것이니라. 그러하니 ‘겸손’은 단순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라 케노시스라는 ‘자기비움’의 ‘겸손’을 예수님을 통해 배우려 하느니라.
또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같은 자기비움의 삶을 살 것을 말 하나니
‘자기비움’이란 타인에 의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추는 것이니라.
그러하니 ‘자기비움의 삶’을 ‘겸손의 극치’라 하는도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니’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시간을 초월하여 선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말이니라.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그 때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인간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해 구세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비어 있는 말구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가 되었느니라.
‘비움’이란 사라져 버린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는도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비움’으로 인해 예수님을,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자리,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자리를 마련하며 나아가는 것이 성탄절을 맞이하는 신앙인의
자세이니라. 비어 있다하여 좌절할 것도, 채워지지 않았다하여 실패라 할 것도
아니니 그곳에 성령님을 모신다면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아름다운 곳일 테니.
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 즉 ‘자기 비움의 삶’이란 무엇인가.
첫째,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나니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라고 성경이 말하니 ‘섬기는 종’이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삶이란 말이도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니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 권능을 가지고도 스스로 낮추셨도다.
둘째, 자기를 비워 사람과 같이 되시니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하니 하나님 영광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마저
몸체에 감추시고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을, 히브리서는 말하느니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라고.
우리가 겪는 아픔과 슬픔 모든 것을 공감하시려 함께하신 것일러라.
모든 것을 비워 우리를 담으신 예수님을 이제 우리가 품어야 할지니라.
셋째, 자기를 비워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목숨까지 대속물로 내주시니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도다. 마가복음은 말하느니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모든 것을
비워내시고 그곳에 사랑을 채우심으로 모든 영혼에게 새로운 생명의 삶을
영위하도록, 그 거룩한 사랑의 길을 여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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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가나 일본어성경
ピリピ人(びと)への手紙(てがみ) 二章(にしょう)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겸손(자기비움-Kenosis)” (빌리보서2장1절~8절)
https://www.youtube.com/watch?v=TwRvLAC8Vjc
1. こういうわけですから、もしキリストにあって励(はげ)ましが
あり、愛(あい)の慰(なぐさ)めがあり、御霊(みたま)の
交(まじ)わりがあり、愛情(あいじょう)とあわれみがあるなら、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私(わたし)の喜(よろこ)びが満(み)たされるように、
あなたがたは一致(いっち)を保(たも)ち、同(おな)じ愛の
心(こころ)を持(も)ち、心を合(あ)わせ、志(こころざし)を
一(ひと)つにしてください。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何事(なにごと)でも自己中心(じこちゅうしん)や
虚栄(きょえい)からすることなく、へりくだって、
互(たが)いに人(ひと)を自分(じぶん)よりも
すぐれた者(もの)と思(おも)いなさい。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自分のことだけではなく、
他(た)の人(ひと)のことも顧(かえり)みなさい。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あなたがたの間(あいだ)では、
そのような心構(こころがま)えでいなさい。
それはキリスト․イエスのうちにも見(み)られるものです。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キリストは、神(かみ)の御姿(みすがた)である方(かた)なのに、
神のあり方を捨(す)てられないとは考(かんが)えず、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ご自分(じぶん)を無(む)にして、
仕(つか)える者(もの)の姿(すがた)をとり、
人間(にんげん)と同(おな)じようになられました。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人(ひと)としての性質(せいしつ)をもって現(あら)われ、
自分を卑(いや)しくし、死(し)にまで従(したが)い、
実(じつ)に十字架(じゅうじか)の死にまでも従われました。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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