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默想詩]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소망” (시편42편1절~5절) / 李觀衡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이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시편 42편은 영적 침체기인 고라 자손의 교훈이니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며 살던 후손이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탄식하니 절망과 낙심, 불안함이 역력하도다. 아마도 전쟁, 아니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니라.
주변의 조롱 또한 극심하니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라 부르짖는도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에게 잊혀진 존재인 듯 느끼는 영적 침체가, 주변의 조롱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리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소망”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인내하며 마침내 승리하는 삶으로 승화시켜야 할지니
첫째, 소망은 절망이 아닌 ‘갈망’임을 잊지 말지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반문하니 이는 낙심과 불안, 절망 가운데서도 죽음이 아닌
살고자 하는 희망을 잃지 않은 ‘갈망’으로 갈급함을 보여 주는 것이니라.
저자는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라고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사슴의 비유는,
단순히 목마른 상태를 말함이 아니요, 생존과 직결된 절박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니라. 구원의 주를.
문제 앞에 납작 엎드리는 절망이 아닌, 소망을 간직하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는 갈망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마침내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느니라. 세상의 명예와 재물을 찾아 헤매는
삶이아닌 영원한 생명수를 아낌없이 주시는 구세주께 소망을 두는 삶을.
둘째, 소망은 흔들리지 않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니
막연한 감정도 긍정적 기대나 바람도 아니니라. 참된 소망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니라.
즉 소망(תִּקְוָה, Tikvah)은, 줄, 기대, 확신이란 의미이도다.
여리고 성을 정복하려 한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운 기생 라합은, 그들의 말대로 집에 ‘붉은 줄’을 달아 구원받았느니라.
그 ‘줄’이 곧 ‘소망’을 말함이니 그것은 구원 줄, 생명 줄인 것이니라.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니라’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그러하니 참된 소망의 소유자는,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절망 가운데서도 부활의 소망을 품고
인내하고 마침내 영원한 새 생명을 얻는 삶을 사는 것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니라.
셋째, 소망은 ‘끝까지 견디는 인내’이니 시편 42편 5절의 소망(יָחַל yāḥal)은,
기다리다, 인내하다라는 의미로,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의 동역자‘소망’은
‘믿음’ ‘충성’이 세상에서 순교한 후, 즉 절망의 순간에 만났느니라. 그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 이들을 구원하여 인내하고 견디도록 도와주는 자이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크리스천이 죽음의 강을 건너 천성에 들어갈 때 함께한 ‘소망’이니
영생의 문을 열고 들어 설 때까지 굳게 붙들고 동행할 것은 ‘소망’이니라.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이같이 과거에 머문다면 상한 심령뿐이며, 그럼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깨어 기도하는 삶으로 마침내는 승리하도록 해야 할지니라.
넷째, 소망은 선취적 ‘승리의 찬양’이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니 불안하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다는 선취적 ‘승리의 찬양’을 드리는 것이니라.
-------------------
요미가나 일본어성경
詩篇(しへん) 四十二篇(よんじゅうにへん)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소망” (시편42편1절~5절)
https://www.youtube.com/watch?v=rXha7rF17W0
1. 鹿(しか)が谷川(たにがわ)の流(なが)れを慕(した)いあえぐように、
神(かみ)よ。私(わたし)のたましいはあなたを慕いあえぎます。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私(わたし)のたましいは、神(かみ)を、生(い)ける神を求(もと)めて
渇(かわ)いています。いつ、私は行(い)って、神の御前(みまえ)に出(で)ましょうか。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私(わたし)の涙(なみだ)は、昼(ひる)も夜(よる)も、
私の食(た)べ物(もの)でした。人(ひと)が一日中(いちにちじゅう)
「おまえの神(かみ)はどこにいるのか」と私に言(い)う間(あいだ)。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私(わたし)はあの事(こと)などを思(おも)い起(お)こし、私の前(まえ)で
心(こころ)を注(そそ)ぎ出(だ)しています。私があの群(む)れといっしょに
行(い)き巡(めぐ)り、喜(よろこ)びと感謝(かんしゃ)の声(こえ)をあげて、
祭(まつ)りを祝(いわ)う群衆(ぐんしゅう)とともに神(かみ)の家(いえ)へと
ゆっくり歩(ある)いて行ったことなどを。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わがたましいよ。なぜ、おまえはうなだれているのか。私(わたし)の
前(まえ)で思(おも)い乱(みだ)れているのか。神(かみ)を待(ま)ち望(のぞ)め。
私はなおも神をほめたたえる。御顔(みかお)の救(すく)いを。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요미가나 일어성경 > 이창용 목사님 원당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默想詩]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겸손(자기비움-Kenosis)” (빌립보서2장1절~8절) / 李觀衡 (3) | 2025.12.22 |
|---|---|
| 150**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 27** [默想詩] 헵시바와 쁄라 (이사야 62장1절~5절) / 李觀衡 (2) | 2025.12.20 |
| [默想詩] 아첨쟁이(이단)의 경계 (시편 50편16절~23절) / 李觀衡 (3) | 2025.12.13 |
| [默想詩]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기쁨” (빌립보서4장1절~5절) / 李觀衡 (4) | 2025.12.08 |
| [默想詩]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영광스러움” (시편8장1절~9절) (4) | 2025.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