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詩] 하나님의 마음으로 (출애굽기2:11~22) / 이창용 목사님
절망과 죽음의 시간 속에서도 믿음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나니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보이는 출애굽이도다.
죽음의 나일강에서 건져내져 구원받은 모세
구원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여시는 하나님이니라.
오늘 우리도 모세라 일컬음은 죄란 죽음으로부터
건져져 새로운 세상에 사는 구원받은 자 임일러라.
모세의 애굽인 살해와 광야 생활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느니 지혜를 배워 일이 능한 모세였으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도다.
모세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 신앙으로 나아가
다른 자를 건져내는 구원의 사명감을 가져야 하리니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난 모세 아니던가. 구원의 사명을 잊지 않는....
미디안 우물가에서 제사장 딸들을 구원한 모세이니라.
제사장 딸과의 결혼으로 이방 민족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도다.
구원의 사명을 이어가는 성도는 복이 있을지어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신전 의식을 가져야 하느니라.
좌우의 인간을 볼 것 아니요. 위를 바라봐야 하느니
모세의 열정은 가상하나 혈기만으로는 이룰 수 없도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이는 참된 신앙의 길이니 믿는 자에게 능치 못 할 것 없도다.
환대의 신앙을 가져야 하리니 절망을 희망으로 바꿈일러라.
나그네 신앙도 빼놓을 수 없느니 아들 게르솜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는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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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詩] 神の心で / 일역 이관형
切望と死の時間の中でも信仰を通じて
新しい時代を開く過程を見るのに
驚くべき救いの御業を見せる出エジプトである。
死のナイル川から引き上げられて救われたモーセ
救いを通じて新しい世間を開く神である。
今日我らがモーセと呼ばれるのは罪との死から
引き上げられ、新しい世間に生きる救われた者だからである。
モーセのエジプト人殺害と荒野生活は、信仰の目で
見なくちゃいけないのに知恵を学び、力ある業のモーセだったけれど
神の民と共に苦しむことを選び取った。
モーセの様に神の聖なる共同体信仰で進み、
他人を引き上げる救いの使命をもつ。
四十歳になったころ、その兄弟であるイスラエル人を、
顧みる心を起こしたモーセでないか。救いの使命を忘れない....
ミデヤン井戸の傍らで祭司の娘たちを救ったモーセである。
祭司の娘との結婚で異邦人の救いの業を
成し遂げられる驚くべき神の導くことが分かる。
救いの使命を受け継ぐ聖徒は幸いであるぞ。
又神の前での神殿意識を守るべきである。
左右の人間を見るのじゃなく天を仰ぐべきなのに
モーセの熱情は感心だが血気だけでは成し遂げられない。
「信仰によって、エジプトを立ち去り、王の怒りを恐れないで、
目に見えない方を見るようにして、忍び通したからです。」
こりゃ真の信仰道で信仰者はできないことはない。
歓待信仰を守るべきなのに絶望を希望に変るからである。
旅人信仰も忘れちゃいけないのに、ゲルショムとの子の名前で
分かるように我らには帰らなきゃならぬ本郷がある。
「神はイスラエル人をご覧になり、神は御心を留められた。」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聖詩] 하나님의 마음으로
神(かみ)の心(こころ)で
절망과 죽음의 시간 속에서도 믿음을 통하여
切望(せつぼう)と死(し)の時間(じかん)の中(なか)でも信仰(しんこう)を通(つう)じて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나니
新(あたら)しい時代(じだい)を開(ひら)く過程(かてい)を見(み)るのに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보이는 출애굽이도다.
驚(おどろ)くべき救(すく)いの御業(みわざ)を見(み)せる出(しゅつ)エジプトである。
죽음의 나일강에서 건져내져 구원받은 모세
死(し)のナイル川(がわ)から引(ひ)き上(あ)げられて救(すく)われたモーセ
구원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여시는 하나님이니라.
救(すく)いを通(つう)じて新(あたら)しい世間(せけん)を開(ひら)く神(かみ)
である。
오늘 우리도 모세라 일컬음은 죄란 죽음으로부터
今日(こんにち)我(われ)らがモーセと呼(よ)ばれるのは罪(つみ)との死(し)から
건져져 새로운 세상에 사는 구원받은 자 임일러라.
引(ひ)き上(あ)げられ、新(あたら)しい世間(せけん)に生(い)きる救(すく)われた者(もの)だからである。
모세의 애굽인 살해와 광야 생활은 믿음의 눈으로
モーセのエジプト人(じん)殺害(さつがい)と荒野生活(あらのせいかつ)は、信仰(しんこう)の目(め)で
보아야 하느니 지혜를 배워 일이 능한 모세였으나
見(み)なくちゃいけないのに知恵(ちえ)を学(まな)び、力(ちから)ある業(わざ)のモーセだったけれど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도다.
神(かみ)の民(たみ)と共(とも)に苦(くる)しむことを選(えら)び取(と)った。
모세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 신앙으로 나아가
モーセの様(よう)に神(かみ)の聖(せい)なる共同体信仰(きょうどうたいしんこう)で進(すす)み、
다른 자를 건져내는 구원의 사명감을 가져야 하리니
他人(たにん)を引(ひ)き上(あ)げる救(すく)いの使命(しめい)をも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四十歳(よんじゅっさい)になったころ、その兄弟(きょうだい)であるイスラエル人(じん)を、
생각이 난 모세 아니던가. 구원의 사명을 잊지 않는....
顧(かえり)みる心(こころ)を起(お)こしたモーセでないか。救(すく)いの使命(しめい)を忘(わす)れない....
미디안 우물가에서 제사장 딸들을 구원한 모세이니라.
ミデヤン井戸(いど)の傍(かたわ)らで祭司(さいし)の娘(むすめ)たちを救(すく)ったモーセである。
제사장 딸과의 결혼으로 이방 민족 구원의 역사를
祭司(さいし)の娘(むすめ)との結婚(けっこん)で異邦人(いほうじん)の救(すく)いの業(わざ)を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도다.
成(な)し遂(と)げられる驚(おどろ)くべき神(かみ)の導(みちび)くことが分(わ)かる。
구원의 사명을 이어가는 성도는 복이 있을지어다.
救(すく)いの使命(しめい)を受(う)け継(つ)ぐ聖徒(せいと)は幸(さいわ)いであるぞ。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신전 의식을 가져야 하느니라.
又(また)神(かみ)の前(まえ)での神殿(しんでん)意識(いしき)を守(まも)るべきである。
좌우의 인간을 볼 것 아니요. 위를 바라봐야 하느니
左右(さゆう)の人間(にんげん)を見(み)るのじゃなく天(てん)を仰(あお)ぐべきなのに
모세의 열정은 가상하나 혈기만으로는 이룰 수 없도다.
モーセの熱情(ねつじょう)は感心(かんしん)だが血気(けっき)だけでは成(な)し遂(と)げられない。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信仰(しんこう)によって、エジプトを立(た)ち去(さ)り、王(おう)の怒(いか)りを恐(おそ)れないで、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目(め)に見(み)えない方(かた)を見るようにして、忍(しの)び通(とお)したからです。」
이는 참된 신앙의 길이니 믿는 자에게 능치 못 할 것 없도다.
こりゃ真(まこと)の信仰道(しんこうみち)で信仰者(しんこうもの)はできないことはない。
환대의 신앙을 가져야 하리니 절망을 희망으로 바꿈일러라.
歓待信仰(かんたいしんこう)を守(まも)るべきなのに絶望(ぜつぼう)を希望(きぼう)に変(かわ)るからである。
나그네 신앙도 빼놓을 수 없느니 아들 게르솜이란 이름에서
旅人信仰(たびびとしんこう)も忘(わす)れちゃいけないのに、ゲルショムとの子(こ)の名前(なまえ)で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는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느니라.
分(わ)かるように我(われ)らには帰(かえ)らなきゃならぬ本郷(ほんごう)がある。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神(かみ)はイスラエル人(じん)をご覧(らん)になり、神は御心(みこころ)を
留(と)めら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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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가나 일본어성경
出(しゅつ)エジプト記(き) 二章(にしょう)
하나님의 마음으로 (출애굽기2:11~22)
주일오전
하나님의 마음으로 출 2:11-22 이창용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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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こうして日(ひ)がたち、モ-セがおとなになったとき、
彼(かれ)は同胞(どうほう)のところへ出(で)て行(い)き、
その苦役(くえき)を見(み)た。
そのとき、自分(じぶん)の同胞であるひとりのヘブル人(じん)を、
あるエジプト人が打(う)っているのを見た。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あたりを見回(みまわ)し、ほかにだれもいないのを
見届(みとど)けると、彼(かれ)はそのエジプト人(じん)を
打(う)つ殺(ころ)し、これを砂(すな)の中(なか)に隠(かく)した。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次(つぎ)の日(ひ)、また外(そと)に出(で)てみると、なんと、
ふたりのヘブル人(じん)が争(あらそ)っているではないか。
そこで彼(かれ)は悪(わる)いほうに「なぜ自分(じぶん)の
仲間(なかま)を打(う)つのか。」と言(い)った。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するとその男(おとこ)は、「だれがあなたを
私(わたし)たちのつかさやさばきつかさにしたのか。
あなたはエジプト人(じん)を殺(ころ)したように、
私も殺そうと言(い)うのか。」と言った。そこでモ-セは
恐(おそ)れて、きっとあのことが知(し)れたのだと思(おも)った。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パロはこのことを聞(き)いて、モ-セを殺(ころ)そうと
捜(さが)し求(もと)めた。しかし、モ-セはパロのところから
のがれ、ミデヤンの地(ち)に住(す)んだ。
彼(かれ)は井戸(いど)のかたわらにすわっていた。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 ミデヤンの祭司(さいし)に七人(しちにん)の娘(むすめ)がいた。
彼女(かのじょ)たちが父(ちち)の羊(ひつじ)の群(む)れに
水(みず)を飲(の)ませるために来(き)て、水を汲(く)み、
水ぶねに満(み)たしていたとき、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羊飼(ひつじか)いたちが来(き)て、彼女(かのじょ)たちを
追(お)い払(はら)った。すると、モ-セは立(た)ち上(あ)がり、
彼女たちを救(すく)い、その羊(ひつじ)の群(む)れに
水(みず)を飲(の)ませた。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彼女(かのじょ)たちが父(ちち)レウエルのところに
帰(かえ)ったとき、父(ちち)は言(い)った。
「どうしてきょうはこんなに早(はや)く帰(かえ)って
来(き)たのか。」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彼女(かのじょ)たちは答(こた)えた。
「ひとりのエジプト人(じん)が私(わたし)たちを
羊飼(ひつじか)いたちの手(て)から救(すく)い出(だ)して
くれました。そのうえその人(ひと)は、私たちのために
水(みず)まで汲(く)み、羊(ひつじ)の群(む)れに
飲(の)せてくれました。」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父(ちち)は娘(むすめ)たちに言(い)った。
「その人(ひと)はどこにいるのか。どうしてその人を
置(お)いて来(き)てしまったのか。食事(しょくじ)をあげるために
その人(ひと)を呼(よ)んで来なさい。」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モ-セは、思(おも)い切(き)ってこの人(ひと)といっしょに
住(す)むようにした。そこでその人は娘(むすめ)のチッポラを
モ-セに与(あた)えた。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彼女(かのじょ)は男(おとこ)の子(こ)を産(う)んだ。
彼(かれ)はその子をゲルショムと名(な)づけた。
「私(わたし)は外国(がいこく)にいる寄留者(きりゅうしゃ)だ。」と
言(い)ったからである。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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