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래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런 내용의 대사가 나온다.
"나는 온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
그들 모두를 나는 사랑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사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가 나에게 한 잘못은 내가 아무리 용서하려 해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 크게 상관이 없는 일에 대해서는 용서가 어렵지 않지만,
자신과 관계된 일에서는 하찮은 것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고백이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기 전에는 결코....."
하며 용서의 문을 걸어 잠근 채 보복의 가슴앓이로
뒷걸음 질 칠 때가 너무 많다.
"당한 건 난데 왜 내가 먼저 용서를 해야 해 ?"
그렇게 버티며 꿈쩍도 하지 않으려 한다.
"저 사람은 이 일을 통해 뭔가 배워야 해.
한동안 속 좀 끓이게 내버려둬.
본인한테도 이로울 거야.
행동엔 결과가 따른다는 걸 배워야 해.
잘못한 건 저쪽이야.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일이 아니지.
잘못한 줄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 ?"
설령 용서한다고 해도 찝찝한 여운이 남는 경우도 있다.
용서는 결코 쉽지 않다.
헨리 나웬은 용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한다.
"말로는 종종 '용서합니다' 하면서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마음에는 분노와 원한이 남아 있다.
여전히 내가 옳았다는 말을 듣고 싶고,
아직도 사과와 해명을 듣고 싶고,
끝까지 너그러이 용서한 데 대한 칭찬을
돌려받는 쾌감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편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해 더욱 필요하다.
용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 사람을 소개한다.
1991년 김용제(당시21세) 씨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승용차로 여의도 한복판을 질주한 일이 있었다.
그때 많은 어린이들이 차에 치여 비참하게 죽었다.
그때 서윤범 할머니는 6살 난 손자를 잃었다.
할머니는 손주를 잃은 슬픔을 달랠 길이 없어서
며칠 수도원에 들어가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주십니까 ?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할머니의 기도가 원망을 넘어 청년에 대한 분노로 폭발되고 있을 때,
할머니의 마음속에 뚜렷한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용서하라."
그 음성은 거역할 수 없을 만큼 크게 거듭 거듭 들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김씨가 사형 선고를 받던 날 검사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할머니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김씨가 불우한 환경에
시각장애로 취직도 한번 제대로 못했던 사정을 알게 되면서
할머니는 김씨의 선처를 탄원했다.
그 뒤 남편과 며느리가 세상을 뜨는 불행이 겹쳐
하루에도 몇 번씩 용서와 분노 사이를 오갔지만
김씨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용서만이 살 길임을 깨달았다.
결국 할머니는 김씨를 양자로 받아들이고,
아침마다 그를 살려 달라고 기도했다.
비록 김씨는 1997년 12월 사형이 집행되었지만
죽기 직전에 할머니의 용서와 사랑을 받고
세례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ー사랑으로 인생을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