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詩] 절망의 늪에서 다시 나아가기! (마태복음13:18~23) / 이창용 목사님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
[聖詩] 절망의 늪에서 다시 나아가기! (마태복음13:18~23) / 이창용 목사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멸망의 도시로 돌아가는 고집쟁이니라.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 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는
변덕쟁이로, 천성으로 나아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깨닫는 자는 결실하여
백배는 더하리니 더없이 좋은 밭이 아닌가.
죄인이 말씀과 성령에 의해 자신의 비참함과
더러움을 자각할 때 느끼는 내적 현상이 바로
낙담 즉 절망의 늪이니 경계해야 하느니라.
사람의 힘으로 고치거나 없이할 수 없으니...
늪에서 마음에 찔려 이를 가는 변덕쟁이와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따르는 순레자는
정반대의 길을 가나니, 영적 시각과 목적.
분별력을 가진 자는 늪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는 천성을 향한 좁은 문의 방향을 앎일러라.
무거운 짐 진 자가 스스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나
“보혜사가 보내신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니”
우리는 기도할 바를 모르나 성령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은 물으시나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고?”라고, 우리는 부주의와 잘못을
깨달아 겸손히 인정하고 고백할 때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
‘두려움이 엄습하여 다른 길로 도망하려다 절망의 늪으로...’
------------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
[聖詩] 絶望(ぜつぼう)の沼(ぬま)から再(ふたた)び進(すす)むこと! / 일역 이관형
「御国のことばを聞いても悟らないと、
悪い者が来て、その人の心に蒔かれたものを
奪って行きます。道ばたに蒔かれるとは、このような人のことです。」
滅亡の都に戻る意地っ張りである。
「また岩地に蒔かれるとは、みことばを聞くと、
すぐに喜んで受け入れる人のことです。しかし、自分のうちに根がないため、
しばらくの間そうするだけで、みことばのために困難や
迫害が起こると、すぐにつまずいてしまう者。」は
お天気屋で、天国に歩むことはできない。
人は、たとい全世界を手に入れても、
自分自身を失い、損じたら、何の得がありましょう。
御言葉を聞いて従順し、悟る者は実を結び、
百倍は増すのだから極まりて良い畑じゃないか。
罪人が御言葉と聖霊により、自分の悲惨さと
汚れを自覚した時、感じる内的現象が正に
落胆即ち絶望の沼だから警戒せざるを得ない。
人の能力で直したり無くせないので...
沼で腸が煮え返る思いで、歯ぎしりしたお天気屋と
何時も目覚め、祈り、御言葉に従う巡礼者は
正反対の道を歩むから霊的視覚と目的、
分別力ある者なら沼から抜け出せるのに
こりゃ天国への狭い門の方向を知った訳である。
重荷を背負った者が自ら抜け出すのは不可能であるけど
「助け主が遣わした聖霊が、全てのことを教えて思い起こさせて下さり、」
我らはどう祈ったら良いかわからないが、聖霊ご自身が、執り成して下さる。
弱い我らを助ける聖霊は尋ねられる、
「今何をしてるの?」と、我らは、不注意と過ちを
悟り、謙遜に認めて告白する時こそ救われるのである。
'恐れに襲われ、他の道に逃げようとしたが絶望の沼へ…'
------------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
[聖詩] 절망의 늪에서 다시 나아가기!
絶望(ぜつぼう)の沼(ぬま)から再(ふたた)び進(すす)むこと!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御国(みくに)のことばを聞(き)いても悟(さと)らないと、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悪(わる)い者(もの)が来(き)て、その人(ひと)の心(こころ)に蒔(ま)かれたものを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奪(うば)って行(い)きます。道(みち)ばたに蒔(ま)かれるとは、このような人(ひと)のことです。」
멸망의 도시로 돌아가는 고집쟁이니라.
滅亡(めつぼう)の都(みやこ)に戻(もど)る意地(いじ)っ張(ぱ)りである。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また岩地(いわち)に蒔かれるとは、みことばを聞くと、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すぐに喜(よろこ)んで受(う)け入(い)れる人(ひと)のことです。しかし、自分(じぶん)のうちに根(ね)がないため、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 하여 환난이나
しばらくの間(あいだ)そうするだけで、みことばのために困難(こんなん)や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는
迫害(はくがい)が起(お)こると、すぐにつまずいてしまう者(もの)。」は
변덕쟁이로, 천성으로 나아갈 수 없느니라.
お天気屋(てんきや)で、天国(てんごく)に歩(あゆ)むことはできな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人(ひと)は、たとい全世界(ぜんせかい)を手(て)に入(い)れても、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自分自身(じぶんじしん)を失(うしな)い、損(そん)じたら、何(なん)の得(とく)がありましょう。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깨닫는 자는 결실하여
御言葉(みことば)を聞(き)いて従順(じゅうじゅん)し、悟(さと)る者(もの)は実(み)を結(むす)び、
백배는 더하리니 더없이 좋은 밭이 아닌가.
百倍(ひゃくばい)は増(ま)すのだから極(きわ)まりて良(い)い畑(はたけ)じゃないか。
죄인이 말씀과 성령에 의해 자신의 비참함과
罪人(つみびと)が御言葉(みことば)と聖霊(せいれい)により、自分(じぶん)の悲惨(ひさん)さと
더러움을 자각할 때 느끼는 내적 현상이 바로
汚(よご)れを自覚(じかく)した時(とき)、感(かん)じる内的現象(ないてきげんしょう)が正(まさ)に
낙담 즉 절망의 늪이니 경계해야 하느니라.
落胆(らくたん)即(すなわ)ち絶望(ぜつぼう)の沼(ぬま)だから警戒(けいかい)せざるを得(え)ない。
사람의 힘으로 고치거나 없이할 수 없으니...
人(ひと)の能力(のうりょく)で直(なお)したり無(な)くせないので...
늪에서 마음에 찔려 이를 가는 변덕쟁이와
沼(ぬま)で腸(はらわた)が煮(に)え返(かえ)る思(おも)いで、歯(は)ぎしりしたお天気屋(てんきや)と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따르는 순레자는
何時(いつ)も目覚(めざ)め、祈(いの)り、御言葉(みことば)に従(したが)う巡礼者(じゅんれいしゃ)は
정반대의 길을 가나니, 영적 시각과 목적.
正反対(せいはんたい)の道(みち)を歩(あゆ)むから霊的視覚(れいてきしかく)と目的(もくてき)、
분별력을 가진 자는 늪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分別力(ふんべつりょく)ある者(もの)なら沼(ぬま)から抜(ぬ)け出(だ)せるのに
이는 천성을 향한 좁은 문의 방향을 앎일러라.
こりゃ天国(てんごく)への狭(せま)い門(もん)の方向(ほうこう)を知(し)った訳(わけ)である。
무거운 짐 진 자가 스스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나
重荷(おもに)を背負(せお)った者(もの)が自(みずか)ら抜(ぬ)け出(だ)すのは不可能(ふかのう)であるけど
“보혜사가 보내신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니”
「助(たす)け主(ぬし)が遣(つか)わした聖霊(せいれい)が、全(すべ)てのことを教(おし)えて思(おも)い起(お)こさせて下(くだ)さり、」
우리는 기도할 바를 모르나 성령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我(われ)らはどう祈(いの)ったら良(よ)いかわからないが、聖霊(せいれい)ご自身(じしん)が、執(と)り成(な)して下(くだ)さる。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은 물으시나니
弱(よわ)い我(われ)らを助(たす)ける聖霊(せいれい)は尋(たず)ねられる、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고?”라고, 우리는 부주의와 잘못을
「今(いま)何(なに)をしてるの?」と、我(われ)らは、不注意(ふちゅうい)と過(あやま)ちを
깨달아 겸손히 인정하고 고백할 때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
悟(さと)り、謙遜(けんそん)に認(みと)めて告白(こくはく)する時(とき)こそ救(すく)われるのである。
‘두려움이 엄습하여 다른 길로 도망하려다 절망의 늪으로...’
'恐(おそ)れに襲(おそ)われ、他(た)の道(みち)に逃(に)げようとしたが絶望(ぜつぼう)の沼(ぬま)へ…'
============
요미가나 일본어성경
マタイの福音書(ふくいんしょ) 十三章(じゅうさんしょう)
절망의 늪에서 다시 나아가기! (마태복음13:18~23)
https://www.youtube.com/watch?v=FdUve073CIQ
18. ですから、種蒔(たねま)きのたとえを聞(き)きなさい。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御国(みくに)のことばを聞いても悟(さと)らないと、
悪(わる)い者(もの)が来(き)て、その人(ひと)の心(こころ)に
蒔(ま)かれたものを奪(うば)って行(い)きます。道(みち)ばたに
蒔かれるとは、このような人のことです。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20. また岩地(いわち)に蒔かれるとは、みことばを聞くと、
すぐに喜(よろこ)んで受(う)け入(い)れる人(ひと)のことです。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しかし、自分(じぶん)のうちに根(ね)がないため、
しばらくの間(あいだ)そうするだけで、みことばのために
困難(こんなん)や迫害(はくがい)が起(お)こると、
すぐにつまずいてしまいます。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また、いばらの中(なか)に蒔(ま)かれるとは、
みことばを聞(き)くが、この世(よ)の心(こころ)づかいと
富(とみ)の惑(まど)わしとがみことばをふさぐため、
実(み)を結(むす)ばない人のことです。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ところが、良(よ)い地(ち)に蒔かれるとは、みことばを
聞(き)いてそれを悟(さと)る人(ひと)のことで、その人はほんとうに
実(み)を結(むす)び、あるものは百倍(ひゃくばい)、あるものは
六十倍(ろくじゅうばい)、あるものは三十倍(さんじゅうばい)の
実を結びます。」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 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